2008년 10월 22일
3류 예비 지식인의 비애
나는 아는척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지식들로 무척 많이 아는 것처럼 티를 낸다. 좀 더 어렸을적 이야기 이지만, 내가 생각해 보아도 어처구니 없는 것을 사실인양 말한 적도 있다.
내 허풍들이 깨어지는 민망함을 몇번 겪게된 이후에 나는 좀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 옛날만큼 허풍을 늘어놓지는 않고, 확실치 않은 것 같은 지식들은 "~일지도 모른다." "~인거 같다." 라는 식으로 회피하는 방식도 터득했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서 비애를 느끼는 것일까?
사실 나는 아는척하고 싶은 욕망을 다 버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침묵한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들이 정말 사실인지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는 일들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는 내 허풍들이 무너졌던 것과는 다른데, 허풍들은 내가 아는 사실에, 내 생각과 청자들에게 좀 더 기억에 잘 남을수 있도록 가공한 스토리까지 첨가하는, 5:5로 진실과 거짓이 섞인 것이었다.때문에 그런 허풍은 이야기하던 내 스스로도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게 깨어진 것에 대해서 나는 그저 부끄럽고, 다시는 그런 일을 안하면 되는것이다.
그러나 내가 100%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설득력있는 논거가 전개되었을때 나는 무엇을 어찌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사실들의 충돌, 학설들의 충돌에서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조심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해석하는 능력자체를 키우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내가 겪었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미케네문명이 무너진 후 도래한 그리스의 암흑시대가 도리아인(도리스인)들의 침략으로 생겼다는 지식의 침몰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기원전 1100년 경 도리스인들의 침략으로 미케네등 그리스지역의 문명이 무너졌다가 기원전 700년대에 부활했으며, 이때 재건된 그리스 문명은 원래살던 이오니아인과 정복자인 도리스인들의 도시가 혼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오니아인의 도시는 아테네이고, 도리스인들의 도시는 스파르타라는 식으로 지식은 내 머리속에서 정리되었다. 덧붙여서, 미노아문명(크레타섬의 문명)은 기원전 1500년 경의 화산폭발로 크게 혼란해진 틈을타 그리스본토의 미케네문명의 사람들이 침략하여 멸망시킨 것으로도 알고 있었다.
이 지식들은 올해 9월에 '문명의 붕괴'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확실한 지식이었고, 사실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붕괴라는 책에서 저자는 이들 문명 -미케네문명과 미노아문명-의 붕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썼다. 문명의 붕괴의 본 주제가 아니기에 간략하게 넘어가긴 했지만, 저자는 이들 설명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 미케네 문명이 도리아인들의 침략에 의해 무너졌다고 하지만, 대대적 문명파괴를 자행한 도리아인들의 고고학적 유산은 칼 한개와 브로치 두개 밖에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마저도 미케네문명권에서 사용되고 있었다는점. 이에 대해 침략후 바로 퇴각하였다는 가설로 설명한다는점. 저자는 이런 가설과 휘귀한 고고학적 유산으로는 '원주민들이 신출귀몰한 요술쟁이의 귀신에게 공포를 느껴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등졌다는 모순에 찬 정황'이라고한 다른 학자의 비판을 인용하고 있다.
- 미노아 문명의 붕괴가 기원전 1500년경의 테라의 화산폭발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제적인 붕괴는 기원전 1450년경이므로 많은 시간차가 있다는점.
나는 이런 저자의 비판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왜 책의 정설로서 위의 설명들이 인용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좀더 확실한 지식을 쌓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설명들의 충돌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판단력, 혹은 이를 대신 판단해줄 다른 사람의 저작도 찾지 못했다. 영어를 못하는 나는 저자가 인용한 참고서적조차 볼 수 없었다.
나는 영어 능력도 부족하고, 한자실력도 모자라며, 원사료를 해석할 수 있는 배경 지식조차 허무하게 부정될 수 있는 약한 것들만 가지고 있다. 때문에, 나는 원사료를 읽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해석해 준 것으로 내 머릿속을 채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지식들이 정말 참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참이라고 확신이 서지 않는 지식을 계속 해서 쌓는 것은 왠지모를 좌절감과 함께, 언젠가 무너질지 모르는 탑을 쌓는 기분이다.
나는 스스로 예비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좀 더 공부하기를 희망하지만, 스스로에게 한계를 많이 느낀다. 나는 내가 디디고 있는 지식이라는 땅이 흐느적 거리는 늪과 같다고 느끼고 있다. 이 늪에서 좀 더 지식을 쌓겠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나는 더더욱 깊이 부정확한 지식이라는 늪에 빠지게 된다. 무언가 정돈된, 단단한 지식의 땅을 다지고 싶은데 이제 의심병이 도져서 무엇이든 의심만 한다.
더욱 슬픈것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알면서도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원사료를 직접 읽고, 고고학적 유물에 대한 논문 혹은 보고서를 직접 읽는 것을 하고 싶지만 그럴만한 언어적 능력과 해석할 수 있는 학식이 없다. 이런 조건들을 노력해가면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때가 언제올지 가늠하지 못할거 같다. 평생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이미 원사료에 가까워져 있다. 내보다 한살많을 뿐인 학교 선배는 2년전에 나에게 "원사료를 읽지 않고, 남이 다 씹어준 것으로 글을 써봐야 한계는 명백하다."라며 내게 원사료를 읽으라고 추천했다. 그 책은 '송사'였는데, 이제 막 한자공부를 시작한 마당에 언제 한자로 된 문장, '한문'을 읽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허망한 지식의 늪에 빠져서 숨이 막힐거 같다. 그리고 언제 이 늪에서 탈출할지 막막하고 아득하다. 그리고 스스로의 지식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내가 너무 허망하다. 내 나이 스물셋. 내 나이에 많은 사람들은 성공했고, 또 옛사람들은 한자로된 고전들을 읽으며 내가 그토록 다가가기 어려워 하는 '원사료'들을 읽고 있었을텐데. 나는 무얼하고 있는지 갑갑하다.
-ps1. 이와 같은 이유로 이글루스를 자주 이용함에도 포스팅을 자주하지 못하고 있다. 내 관심분야에 대한 포스팅을 하기 전에 내가 쓰고자 하는 바가 진실인가에 대해서 무거운 책임과 거기에 따르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ps2. 보낼 밸리가 없어 고민하다가 중간에 역사지식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므로 역사밸리로 보낸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인 고민 늘어놓아봐야 누가봐줄 일은 없을듯. 이런때에 고민밸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by | 2008/10/22 23:50 | 요즘 근황및 생각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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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홈페이지 원문 검색 서비스'가 뭔지 궁금하네요.
+ 충고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