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관계에 관하여 -충돌과 타협-

 

한국에서 공화주의 혹은 신공화주의가 무슨 의미가 어떻게 정립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과 베네치아의 공화주의 역사(혹, 로마도 포함될 수 있다.)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임채원씨가 쓴 ‘공화주의적 국정운영’에는 그런 내용이 물씬 풍긴다. 이 한 사례만 가지고는 내 생각이 기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구조적으로 보면, 공동체의식이 강한 우리사회에서 공화주의란 “상층계층과 하층계층이 서로 ‘화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共和주의 인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 쉽다. - “”은 2008년 역사학 대회에서 한 토론자가 공화주의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이에 공화주의를 직접 공부한 발제자는 이와는 좀 다르다고 말했으나, 이를 쉽게 설명하지는 못했다. 나 역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쉽게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

 어쨌든, 공화주의는 이처럼 공동체의 화합을 중요시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만, 공화주의의 내용 자체는 자유를 중시하며, (인간의 욕망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나온 태도로서) 독재를 매우 싫어한다는 점은 일정 정도 제동을 걸어줄 것이다. 즉, 파시즘과 같은 대중독재로 가기에는 공화주의 길은 매우 다르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충돌은

 첫 번째로, 민주주의는 다수 인민의 뜻을 실현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즉, ‘인민주권론’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큰 논리적 거점이다. 그러나 공화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다만, 공공선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서 두는데, 공공선의 내용은 실은 자유다. <따라서 자유와 공공선의 충돌은 실질적인 ‘자유’를 사회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간섭과 개인의 자의적 자유의 충돌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파생되는 실질적인 정치적 문제는, 민주주의는 다수 인민의 뜻을 위해서는 독재도 원리상으로는 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또, 실제 민주주의의 열망은 다수 인민의 뜻을 대리해줄 영웅을 찾기도 한다. 여기에서, 민주주의는 그 자체만으로는 권력집중에 취약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언제나 권력욕에 흔들릴 수 있는 개인에게 권력집중을 거부하는 공화주의와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앞서 언급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근본적 차이에서 생겨난 문제로서 현대 산업자본주의정치에서 주로 충돌하는 부분이다. 바로 정치에서 정파에 대한 문제이다.

공화주의는 공동체의 화합을 중요시한다. 때문에, 공화 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공동체의 화합을 해치며 공동체 내부에서 서로에 대한 차이를 부각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정파는 정치과정에서 배제시켜야 하는 존재이다. 때문에, 정당에 대한 입장 자체가 부정적이다. 정파, 정당들 간의 대립이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인 ‘공공선’을 해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생각에 충실하다면, 실질적으로 모든 정치는 원내정치화 시켜야 한다. 현실적으로 정당들을 폐지하지 못하겠지만, 정당들이 의회(우리나라에선 국회)에서의 정치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수단을 마련할 수 있다. 마치 실험실을 무균화 하려는 것처럼, 의회라는 정치의 장에서 정당이라는 악을 제거하는 것이다. 실제 이런 방향의 개혁이 20세기 초에 미국에서도 있었고, 우리나라도 어느정도 시도한 바가 있다.(최장집의 저서 ‘어떤민주주의’에서 나온 내용) 문제는 이러한 개혁방향이 뜻하지 않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최장집은 이를 민주주의적인 관점에서 비판한다. 이런 정치체제는 정치엘리트와 항상 대면할 수 있는 사회 상위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기는 쉬운데 반해, 선거철에만 정치엘리트와 대면 가능한 대다수 인민의 이익은 선거가 끝나면 잊힌다는 것이다. 이는 선거 때마다 정치엘리트들이 민주주의의 주인인 대다수 인민을 기만하고, 평상시에는 상위계층과 야합하게 된다. 즉, 상위계층의 이익만이 ‘공공선’으로 포장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다수 인민의 정치적 환멸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나중에는 정치적 무관심으로까지 전화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투표율은 이미 이런 전화가 상당부분 진행되었을 거라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최장집은 책임정당정치, 정당민주주의를 주장한다. 정당이 파편화된 다수 인민의 정치적 의견을 조직화 하고, 이 민의를 정당이 당선시킨 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실현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현대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주권을 나누어 가졌을 때에 이런 식으로 조직화하지 않으면 다수 인민의 뜻은 흩어지고, 선거철에만 희망을 주는, 정치엘리트에 의한 기망만 반복될 것이다.

 두 번째 문제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정파를 배제한 공화주의적 이상정치는 현실속에서는 상위층의 이익을 공공선으로 포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민주주의에서 내세우는 것은 정당정치의 강화이고, 대중정당 조직의 뿌리내림이다. 그러나, 이는 공화주의의 입장에서는 해결책이 아닌데, 왜냐하면 공화주의의 주요 목적중 하나인 공공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부분이익에 기반을 둔 정당을 배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문제에서 첫 번째 문제는 이미 어느 정도 타협점이 제시되어 있고, 두 번째 문제는 신공화주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문제에서의 타협점은 민주주의는 독재보다 공화주의와 연결될 때 더욱 안정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민의 뜻이라고 해도, 그 인민의 뜻을 지속적으로 반영시키기 위해서는 한 개인의 카리스마와 양심에 의지하기보다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이 더욱 안전하다. 그것은 다수 인민의 뜻을 잘 반영하는 체제로부터 발산되는 권위와 인간의 권력욕을 감시하고, 제약하는 제도이다. 이런 타협점은 사실 근대 민주국가 형성 당시부터 있었고, 파시즘의 광풍을 겪은 후 더욱 강조되었다. 민주‘공화’국 이라는 우리나라의 정체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문제에서의 타협점으로 볼 수 있는 주장이 신공화주의에 존재한다. <모라치오 비롤리교수는 ‘공화주의’라는 저서에서 밝힌 바를 참조하였다. > ‘공공선’의 내용을 정하는 데에 정치적 레토릭 (정치적 수사)의 충돌은 인정되고,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 치열한 레토릭의 충돌이 공공의 장 혹은 정치의 장에서 흡수되어야, (무력 등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가 안전해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입장을 이 문제 해결에 접목할 수 있다고 본다. 정당민주주의의 실천에 따른 정치적 충돌이 정치의 장 혹은 공공의 토론의 장에서 있을 때 이는 공동체의 분열을 걱정하기 보다 오히려 환영해야 한다. 정당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균열이 정치에서 논의되지 않으면, 정치는 사회적 영향력, 통제력을 상실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회적 균열이 정치의 장에서 배제되거나, 한 쪽 입장이 축소되어 반영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간단히 말해, 저번 촛불시위와 같이 정치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가권력과 시민권력이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공화주의 체제가 안정성을 가지려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균열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현재 우리사회에 맞는 공공선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정당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속에서 그 균열을 어떻게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 이 고민을 하다가 아직 내 정치적 경험이 일천해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더욱 공부에 전진해야겠다. 특히, ‘자유’와 같은 근본개념에 대한 공부 말이다. -

+ 사상에 대한 생각을 올리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뉴스비평쪽에 올리는게 좀 서글프다.

by 나아가는자 | 2008/11/11 01:56 | 역사, 정치, 경제에 대한 잡설 | 트랙백 | 핑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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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연석 at 2008/11/11 09:55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8/11/11 10:10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자우스카스 at 2008/11/18 06:07
음... 신공화주의도 여전히 담론이라는 측면에서는 약점이 존재합니다. 정치적 영역이 사회 전반의 영역으로서 개념을 확대할 수 있는 가에 대한 반론에서 신공화주의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회전반의 영역이 정치적 영역으로 포섭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신공화주의는 말을 해주지 않고 있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기제를 통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단지 공공선 뿐이다라는 블랙박스를 설정해 설명하고 있죠. 이것은 신공화주의가 끊임없이 보완해나가야할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신공화주의에서 말하는 자유와 공공선은 인간 생활 모든 전반적 영역에서 말하는 자유와 공공선인지, 혹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설정되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자유와 공공선인지 모호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음... 개인적으로 공화주의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있어서 이른바 정의적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롤즈나, 평등적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드워킨의 주장들이 오히려 더 합리성도 있고 합당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신공화주의의 요지와 말하지 못한 부분은 샌들과 매킨타이어같은 공동체주의자들이 더 매끄럽게 설명하고 있고요. 아무래도 공화주의의 최대약점은 어떤 체제를 상정해야 하는가에 있어서, 그것이 민주주의로 결론 내릴수 있는가에 대한 현실적 약점이 뚜렷합니다. 이것은 자유와 공공선의 개념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명확하게 정의내리지 못한 공화주의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8/11/18 09:25
좋은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두번째 단락에 나오는 여러 인물과 사상에 대해서 제 무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더욱 공부하겠습니다. ^^
Commented by 비르투 at 2009/09/01 16:16
전 롤즈(드워킨은 제가 몰라서...OTL)와 공동체주의자들의 약점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복지는 '간섭의 부재'라는 자유주의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기에,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주의는 평등이나 정의같은 다른 이상을 말해야했습니다. 롤즈는 아주 괴악한 합의를 내세웠고요. '무지의 베일'을 쓴 상태에서의 합의라...인간의 본성을 획일화한 상태에서의 합의가 무슨 의미가 있죠? 원래 합의라는 것은 다른 의견들을 조정하는 과정 아닌가요? 인간이 다 똑같다면 그건 합의가 아니라 만장일치지요.

그에 반해 공화주의는 '예속의 부재'라는 자유 개념 하나만으로 사회적 복지를 비롯해 사회경제적 권리들의 보장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주의의 큰 약점은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하나의 선이 존재할 수 있느냐 하는 것, 또 그 하나의 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배제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주의에서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은 도덕과 문화와 전통을 공유한다는 데에 있거든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외부에 배타적이게 됩니다.

공화주의는 하나의 선에 모두가 찬성한다는 환상을 만들지 않고, 사회적 갈등을 인정합니다. 또 공화주의적 애국은 자신이 속한 특정 공화국에 대한 애착이면서도, 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자유의 억압에 눈감지 않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도우라고 말하고요.

공화주의가 상정하는 체제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로 결론내려지지 않는 것은 저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화주의는 자유를 보장할 하나의 수단, 시민들이 공공선에 관심을 갖게 하는 수단으로 시민의 참여를 말합니다. 신공화주의는 이걸 좀 더 발전시켜 공화국에는 시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말해야할 겁니다. 시민일반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법은 소수 사람의 이익에 봉사하고 자유를 해치는 법이 되기 쉽다는 식으로요.
Commented by 비르투 at 2009/09/01 16:0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글이 대충 다룬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도 신공화주의 입장에 따라 정당정치를 긍정합니다. 정파 간 싸움은 공화국이 정체되지 않도록 하는 필수적인 것이지요. 문제는 정당제 자체가 아니라 정당이 과두제적이고 일반당원 및 지지자들의 의견을 잘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대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으로는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정당민주화'가 좋으며 공화주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링크 신고합니다. 공화주의자 동지로서 많이 교류했으면 좋겠어요^^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9/01 20:32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통 글을 못올리고 있었는데, 링크까지 해주셨으니 더욱 분발해야 겠군요. 공화주의자 동지로서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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