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왜 서로 화해하지 못하는가?


 꽤나 거창하게 제목을 써버렸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설명해야 할것은 아래 두가지다.
'독일은 자신의 전쟁을 사죄함으로서, 프랑스와 공동교과서를 쓸 정도로 나아갔는데 왜 일본은 그렇지 못하는가.'
'일본인들은 왜 우리나라 사람들 만큼 국가인식이라든가, 주변국의 인식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가.'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해 설명하면서, 왜 한국과 일본이 화해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위에게 제기한 두 문제중 전자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 보자.

 독일은 자신의 전쟁을 사죄했고, 지금도 네오나치에 대해서는 비관용이라고 할만큼 철저히 자제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도 충분히 전쟁이라는 자신들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이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프랑스와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쓸정도로 많이 발달해 왔다.
 이를 일본과 비교해본다면,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식민지화 한데에 대하여 '통석의 념'을 표했을지는 몰라도 그 사과는 언제나(거의 매년) 다른 정치인들에 의해 뒤집어져 왔다. 과거의 전쟁과 식민지화를 미화하는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네오나치수준을 넘어서서 각종 출판물과 영상물로 자신들의 의견을 알리는 한편 정치권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영향력은 역사교과서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식민지화를 미화하는 표현을 그 교과서에 집어넣기 위해 애쓰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쯤 되면 프랑스인이 부러울 지경이다. 왜 우리는 일본과 같은 악질적이며, 반성할줄 모르는 이웃을 만나서 언제나 우리집이 강탈당하지 않도록 노심초사해야하는 것인가-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상황이 일본인들이 특별히 '악질적이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일단 독일과 프랑스의 예를 보자. 독일이 프랑스를 2차세계대전에 점령하기 이전에 프랑스는 이미 독일과 같은 근대화된 국가였다. -사실 근대화의 측면에서는 독일이 한때 프랑스에 뒤지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일이 프랑스에 무언가 우수한 문물을 전해주기 위해 점령했다는 (일본이 자주 하는)가당찮은 소리를 할수 없다는 데 있는게 아니다. 독일은 이미 근대화된 프랑스사회에 무언가 뿌리깊은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 단순한 점령가지고는 프랑스사회 자체를 재구성할수는 없었다는 거다. 그리고 독일이 프랑스에 남긴 그 어떤 흔적들도 철저히 숙청당했다. 프랑스의 (과격한) 대독협력자 청산작업이 이를 보여준다. 프랑스는 독일에 승리했고(비록 미국과 영국에 꼽사리끼긴 했지만 자신들은 그렇게 느낀다.), 독일이 남긴 영향을 훌훌 털어버렸다. 비록 마음의 상처는 남았겠지만, 자신들의 (그 콧대높은)자부심은 되찾았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은 다르다. 근대화로의 여정을 막 시작하려던 조선(한국)은 일본에 점령당했다. 아직 전근대사회였던 한국은 이른바 '식민지 근대'를 거치면서, 일본에 의해 사회자체가 재구성되었다. 이 강제적 재구성에 의해 일본은 한국에 뿌리 깊은 영향을 남겼고, 사실 이런 영향은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전환만큼의 거대한 사회적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한 거의 영원하게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국은 일본에 승리하지도 못했다. 일본과 무장투쟁을 벌인 한국인들은 미군정 아래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한국인들은 바로 자신들의 주권을 찾지도 못했다. '도둑같이 찾아온'해방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해방된 한국은 부일배(일제협력자)들을 청산하지 못했다. 가장 일차적으로는 부일배들이 자신들을 정치세력화 하였고, 이를 미군정과 이승만이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저에는 부일배들을 과하게 청산할 경우에는 상당부분 근대화된 한국이라는 사회 자체가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미 근대화된 프랑스는 견딜수 있는 정도의 청산이 아직 근대화정도가 미숙한 한국사회에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독한 처방이었던 셈이다. 어쨌든, 반민특위가 부일배들에 의해 강제해산됨으로서 한국의 부일배청산은 최소한의 타협의 여지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국은 자신의 자부심을 되찾을 길이 없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로 부터 입은 -자신들의 사회적 발전과정을 송두리째 빼앗김으로 부터 발생한-상처를 치유할 조금의 치료약도 제공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상처에 일본인들은 매년 소금을 뿌리고 있다. 

 덧붙여서, 독일은 프랑스에 사과했는데, 일본은 왜 한국에 대한 사과에 미온적이거나, 사과자체를 부정하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남은 제국과 식민지의 구도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 모두 한때 식민지를 거느렸던 제국이다. 그리고 이 제국들의 전쟁에 대해 독일이 프랑스에 사과한거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국이 식민지에 공식적으로 사과한 사례는 거의 없다. 아직 견문이 짧은 탓인지는 몰라도 영국이 인도를 수백년관 식민통치했다는 것에대해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죄했다는 말은 들은바 없고,  미국이 군대를 보내 강점했던 필리핀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는 말 역시 들은바 없다.(만약 있다면, 필자의 지식이 짧은 탓이다.) 그렇다면, 왜 일본이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식민지 지배를 가지고 한국에 사과해야 하는가? 
 지금껏 살핀바와 같이,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에 비교해 보자면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차이점이 많다. 독일과 프랑스는 동등한 상대끼리의 티격태격이었다면, 일본과 한국은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였던 것이다.

내생각을 덧붙이자면, 만약 일본이 동북아에서 평화를 추구하자면 반드시 한국에 사과하고, 독일이 프랑스에 행한, 혹은 자신의 사회내 전쟁을 긍정한 자들에 행한 정도의 통제는 해주어야 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가 그렇듯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도 천년이상 이웃한 나라로서 동아시아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재해왔다. 그 와중에는 많은 충돌도 있었지만, 서로 공존했던 부분도 있다. 
 독일은 프랑스에게 사죄함으로서, 이웃국가가 되었다. 비록 서로 충돌이 없다고는 말할수 없겠지만, 최소한 상대방의 의사따윈 무시한채 무력으로 점령하여 내맘대로 하겠다는 생각은 그들의 관념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일본은 한국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아니, 최소한 그 사과는 지금껏 인사치레에 그쳤을뿐, 일본사회에 뿌리깊게 내리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을 강점해 놓고서도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민감해 한다. 그것은 분명 과장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도둑질을 반성하지 않는 옆집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딴지거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를 피해자의 과대망상,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이 잘못된 거다. 사실 미워하는건 힘든거다. 내 할일하기도 바쁘고, 옆에 다른 등치 큰 이웃들(중국,미국,러시아)도 신경써야 하는데 온통 일본에게만 신경써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미워해야 하니까. 미워해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미워하는 거다.

상황이 이런데도 왜 일본은 반성하지 않는가. 왜 자신들의 사죄를 그들 사회전반에 뿌리내리지 않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에게 한국은 대등한 이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 대부분은 한국에 관심이 없다. 그나마 중국이나 알까? 솔직히, '겨울연가'가 없었다면, 일본인의 과반수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은 들어봤는데 그게 어디에 붙어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할거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안보에 위험이 된다고 생각하는'기타조센'-북조선-에 대해서는 민감하다. 김정일이 뭘먹는가에 신경쓸만큼 말이다.)
 즉, 일본은 한국과 친구 혹은 이웃이 될 마음이 없다. 외교적수사는 얼마든 해줄수 있지만, 사회전체적으로 자신과 때에 따라선 충돌할수도 있겠지만 존중해주어야할 이웃이라고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상황에서, 즉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미안해. 그렇지만 꼭 내가 잘못했던건 아니야. 어쨌든 뭐, 친하게 지내자. 그렇다고 나랑 네가 동급이라고는 생각하지마. 그냥 상거래나 터보자는 것 뿐이니까.'라고 한다면 과연 피해자가 화해하고 싶을까? 그것도 죽도록 얻어 터졌는데, 한대 때려주지도 못했고, 남은 상처는 흉한 흉터를 남긴채라면 더더욱 화해할수 없을것이다.
 일본이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면, 이런상태에서 피해자인 한국이 돈때문에 혹은 힘이 없어서 다가올거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스스로 다가서서 상처를 어루만져야 한다. 즉, 독일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또 질문.- 이미 포스팅 하나 분량은 한거 같은데. ㄷㄷ-

 왜 일본은 스스로 다가와서 한국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지 않는걸까?(피해자는 어루만져 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이것은 이제부터 내가 쓰려는 두번째 주제, 
'일본인들은 왜 우리나라 사람들 만큼 국가인식이라든가, 주변국의 인식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좀 오래된 역사로 돌아가 보자. (남북국시대까지 쳤을때 최초의 통일왕조인)고려때, 우리나라는 많은 외부와의 충돌을 겪었다. 그중에는 거란 성종의 40만 대군의 침략도 있었고, 고려와의 전쟁후 20년만에 북중국을 제패할 여진과의 전쟁도 있었으며, 세계최강 몽골군이 말타고 달려온 적도 있었다. 이런 충돌때, 고려는 엄청난 인력을 동원하여 외부사회와 맞섰다. (거란 성종에게 된통 깨졌지만) 강조는 30만 대군을 동원했으며, 강감찬은 20만 대군을 동원했고, 여진과의 전쟁에는 17만을 동원했다. 
 그러나 몽골의 침공(그것도 배타고 가느라 몽골의 포쓰가 감소되었다.)을 제외하면 일본은 침공당하지 않았고, 그 결과 수십만씩의 대규모 인원을 징집하는 일은 하지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상 고려보다 인적, 물적자원 자체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데도 말이다.

 이런 두 사회의 차이는 사회체제에 영향을 끼쳤다. 고려는 건국초기에 지방세력이 강했음에도, 차츰차츰 중앙집권을 확립해 나갔다. 외부사회와의 충돌에 대비한 충분한 인적, 물적 동원체계가 상시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즉, 사회내부의 힘을 최대한 쥐어짜서 단결하지 않으면 고려사회는 외부의 충격을 견뎌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몽골의 침입외에 외부세력의 침공은 없었다. 임진왜란(일본식으로 한다면 '조선출병')은 일본이 수십만의 병력을 동원하는 대규모 인적, 물적 자원 집적체계를 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수도 있었으나, 일회성에 그쳤다. 게다가, 이는 외부세력의 침공이 아닌, 자신들의 표현대로 하면'출병'이다. 즉, 내가 내킬때 때릴수 있는거다. 그런상황에서 상시적인 중앙집권적인 자원집중체계를 수립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사회체제의 차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즉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고려사회의 구성원들은 언제나 외부세력에 민감했다. 언제 자신들의 집을 불태우러 올지 모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주변국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중요했고, 또, 자신들이 주변국들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 지도 중요했다. 여기에 덧붙여서, 근현대사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근대에 들어 한국은 외부세력에 의해 자신의 사회발전과정 자체가 통째로 빼앗기는 비극을 겪었다. 주변국에 의해 사회자체가 빼앗겼던 것이다. 당연히 한국사회의 구성원, 즉 한국인들은 주변국에 대한 인식-주변국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혹은 주변국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에 굉장히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일본은 굳이 주변국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밖에서 지지고 볶든 내땅안넘어 오면 그만이다. 아, 다만 (일본국내의)주변영지에 관심을 기울였을수는 있다. 그들이야 말로 언제 우리마을을 공격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이런생각은 일본의 근대화과정에서 바꼈을 수 있다. 일본이라는 국가로 묶일려면, 그들의 염려대상은 주변영지가 아닌 주변국이 되어야했고, 그들이 묶이는 공동체는 우리마을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메이지유신이후 근대화과정에 들어선지 채 90년도 안된시점에서 일본은 미국에 의해 일정부분 해체되었다. 자유스러운 미국의 분위기 아래에서, 그리고 안전도 미국이 보장하는 상황에서 일본사회는 과연 주변국에 관심을 기울여야 했을까? 물론, 주변국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나라걱정하는 일본의 애국자들도 많다. 이들 대부분이 극우세력이라는 게 문제지만. 어쨌든, 일본사회 전체적으로, 일본사회의 구성원인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나 먹고 사는것도 바쁜데, 알아서 잘 굴러가는 국가니 사회니 하는 것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 주변국에 관심을 안기울였다가 된통 데인적이 일본인들에게는 없다.(미국에게 점령당한 것을 생각할 수 있으나, 미국에게 시비건건 분명 자신들이다.)
 요는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사회와 충돌할 수 있는' 주변국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이 없다. 그리고 '내'가 주변국에 관심이 없다. 

 이제 긴긴 글 마치고 결론으로 가보자.
 일본인들은 한국을 이웃으로서 관심도 없다. (상대적으로 중국에 관심이 있다면, 그 큰 덩치때문에+ 자신들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이 '관심'도 우리기준으로 생각하면 안된다.'상대적'인거다.) 일본사회는 한국사회와 화해를 할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다. 한국사회가 일본사회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일본사회는 반성을 하지 않고, 반성을 내면화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런 일본을 향해 한국을 화를 내면서도 언제나 경계하고 있다.

최종결론 - 그래서 어떤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는한,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배려해 줄 일은 없고, 따라서, 일본과 한국의 진정한 화해는 어려울 것이다.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주제가 술술 풀어지는게, 영어공부하기 싫어서 일거라곤 생각하고 싶지 않다. ㅜㅜ
 그래도 조금씩 메모를 남겨왔던 문제들이 하나의 맥락을 맞춰서 풀어진거 같아서 기쁘다.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온지 2-3년은 된거 같다. 독도문제, 부일배청산문제, 왜 일본은 우리보다 인적, 물적자원이 풍부했음에도-즉, 사회적 여건이 갖추어 졌음에도- 중앙집권적인 정부가 수립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마지막 '헤타리아'문제까지. )

- 헤타리아 문제가 마지막으로 작용하여 생각하다가 정리된 내용이다. 이거 '헤타리아'제작진에 감사를 표해야 할까. 어쨌든, 역사적인 내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있고, 헤타리아문제를 다룬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밸리로 집어넣는다.



by 나아가는자 | 2009/01/18 01:06 | 역사, 정치, 경제에 대한 잡설 | 트랙백 | 덧글(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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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야화 at 2009/01/18 01:22
한/일 관계의 핵심을 어느정도 짚어낸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독과 한/일은 기본 베이스부터 다르니 차이가 생기는 것도 어쩔수 없겠죠.. 많은 부분에 공감하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18 01:44
졸렬한 글인데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시무언 at 2009/01/18 01:24
현재의 정치상황이 있기 까지는 역사가 뒤에 있는 법이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18 01:45
아무래도 전공이 역사다보니 그쪽으로 많이 생각이 가더군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1/18 02:13
잘 쓰셨는걸요?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18 02:32
평소에 좋아하는 블로거인 호프님께 칭찬을 받으니 몸둘바를 모르겠군요.^^
Commented by 자유로픈 at 2009/01/18 09:51
글 잘 읽었습니다. 일본의 '민족성' 내지 '사회성' 측면에서 일본이 한국문제에 무심한 이유를 짚어주셨는데, 저로서는 미처 생각치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많이 얻었습니다.^^
여기에 조금만 첨언해보겠습니다. '일본정치' 부문의 역사를 일별해보면 일본정치인들은 결코 한국문제에 무심하지 않죠. 문제는 '나쁜' 쪽으로 관심이 있다는 것...
일본정치에서는 군국주의 전범들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죠. 제가 알기로 일본정치인 중에 아직도 과반수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한 군국주의 잔존세력 중의 일부는 소위 '친한파'를 형성하여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과 '커넥션'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은 유명합니다. 이들 '친한파'는 한국의 극우반공 독재정권을 옹호하면서 한일합병과 식민지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망언'을 내뱉는 일본정치인들 중 대부분은 이들 '친한파' 계보와 잇닿아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러한 어두운 역사도 한일의 역사적 화해를 가로막는 요인이지요.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18 10:14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정치인들은 일반대중과는 다르게 외부세력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겠지요.(그렇지 않다면 월급도둑이죠.) 저는 그러니까, 과거의 극우세력이 계속 정권을 쥐고, 혹은 그들이 정권을 쥐더라도 그들의 발언을 자제시켜야 하는그런 분위기 자체가 일본사회에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예를들어, 독일의 정치인이 프랑스에 대한 침공은 정당했다,라고 말한다면 당연히 엄청난 비난과함께 매장당하겠지만, 일본의 정치인들은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는 정당했고, 적절했다. 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없는것. 이런 분위기 자체는 일본사회가 한국에 대한 사과를 내면화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만약, 일본사회가 한국에 대한 사과를 내면화 하고 있다면, 말씀하신 군국주의 잔존세력이 설사 정치세력으로 남아있다 하더라도 과거 식민지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고 다닐순 없겠죠.
Commented by ㅇㄹ at 2009/01/18 12:30
쯧쯧 한국과 일본 참 안된 현실

일본이 쫌 우리나라 인정좀 하지 별걸 인정 안해(특히 독도)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18 14:23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독도문제는 그거가지고 또 포스팅하나를 써야할지도 몰라서 위에서는 잘 안다뤘습니다만. 나중에라도 다뤘으면 좋겠군요.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슬라임군 at 2009/01/18 12:54
음, 무척이나 씁쓸한 결론이; orz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동의하는 부분도 많구요.
지식이 짧아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거창하게 근거를 대며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개인적으론 세계화;;의 바람으로 지극히 자기나라밖에 관심이 없던 일본인들이 이제는 꽤 많이 일본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면 점차 섬나라 안에서만의 시선에서 벗어나 좀 넓게 세상을 봐 주지 않을까나...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 사실 국민성이라고 부를만한 무엇이 있다면, 일본인들은 정치뿐아니라 일상에서도 정말이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더군요. (맨날 뭐든지 귀찮다, 귀찮다...;;) 쓰신대로 오랜세월에 의해 형성된 섬나라의 국민성은 우리와 참 많이 다르더랍니다. 그건 정말 작은 한 개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만큼 거대해서, 일본 사람들의 이 뿌리깊은 무관심;;과 무배려에 거대한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싶기에;; 이런 식으로 원인에 대해 조금씩 파악해가면서, 어떻게 하면 앞으로 좋아질까도 생각해보고 싶네요. :-)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18 14:25
사실 저도 희망찬 결론을 내리고 싶었는데, 마지막에 결론쓰고 나서 급우울. ㅜㅜ 제 생각엔 저런 일본인들의 인식 자체가 무너지려면 주변국으로부터의 대대적인 침략과 이에따른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그런 고통을 당하라고 하는것도 말이 안되고, 또 그런 고통후에는 오히려 더더욱 강력한 국가주의적인 집결을 보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만, 여기서는 말씀하신대로 원인이라도 파헤쳐보자. 뭐 이런거라서. 좋아지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아예 논문으로 작성? ㄷㄷ
Commented by 지나가는 사람 at 2009/01/18 13:02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적성국인, 어느 정도 대등한 관계였고
조선과 일본은 식민지-지배국 관계였다는 것에
지금의 독일과 일본의 차이점을 찾으신 관점에 동의합니다.

다만 문화/역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일본의 패전처리 양상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럽 대륙 한 가운데에서 동서로 갈라진 독일은 주변국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었고,
미국의 영양하에 동아시아 이념방어의 방어선 역할을 맡았던 맡았던 일본은 독일과는 달리
동아시아 각국에 대한 부담이 거의 없는 편이었죠.

뭐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당시를 돌아보면 암담합니다. 이게 패전 조약인지. 쓰읍.

전체적으로 동감하고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는 사람 at 2009/01/18 13:03
주변국 관계도 포스팅 하셨군요.;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18 14:28
댓글을 보니까, 일본의 패전처리 양상에 대해서도 고찰해볼걸. 뭐 그런생각이 들더군요.
다만, 제 입장에서는 만약 독일사람들이 정말 프랑스를 이웃으로 인정할 마음이 없었다면, 다시 힘을 되찾은 다음에 사과따위 싹 잊어버리는 상황을 만들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음...그러니까, 제가 이글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사회전체적인 합의 내지는 흐름이라는 거죠.
일본이든 독일이든 강력한 국가이기 때문에, 독립된 그들 나라들에 대해서 외부적인 강제를 언제나 계속하기에는 힘이 듭니다.
-그래도 제게 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셨군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1/18 14:27
에도 막부는 꽤나 중앙집권적이라고 보입니다만... 참근교대는 물론이거니와 각 지역 번주들을 마구 갈아치우는 일도 꽤 많았죠.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18 14:43
참근교대 까지는 들은 가락이 있었는데, 번주들을 갈아치웠다는 건 처음이군요. 역시 제 견문이 짧아서. ㅜㅜ
그래도 글 전체의 논지를 바꿀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사회 전체의 인식을 바꿀만큼의 충격이나 체제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죠.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1/18 15:31
물론 함부로 그런 것은 아니고 뭔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만 그랬지만 요컨대 중앙정권이 그만큼의 힘을 쓸 수 있었다는 게 중요하니까요 ^^.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18 15:36
지적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 ^) at 2009/01/22 19:26
The problems of the Korea colony by Japan were solved in Japan-ROK Basic Relations treaty.

Japan assisted about 6 billion dollars for Korea during the 35 years.

Japan gave South Korea 10 billion in economic crisis of 1997 in South Korea.

We can't do any more.

We have done things that are enough for South Korea.

It has the cause to you South Korea that Japan-South Krea relations are bad!!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24 13:50
Please read again.
Commented by Lectom at 2009/01/24 20:22
"어느 나라든 골때리는 애들은 있다. 미국에는 kkk가 있고, 독일에는 네오나치가 있으며, 러시아, 이탈리아 등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애는 정치하는 애들이 다 그렇다.' - 진중권.....

뭐, 정확하게 따온건 아니지만 저런 취지의 말이 기억나는군요. :)

그러면서 유엔 상임이사국에 목숨거는거 보면... 참 알다가도 모를 동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24 20:35
일본 정치에 문제가 많은건 사실이죠. 특히 일본 정치계...그러나 가카께서 이 나라의 대권을 잡은 이후에, 저는 일본정치에 대한 비평을 삼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파서요. ㅜㅜ
Commented by Lectom at 2009/01/24 20:43
정말이지 요새는 피우지도 않는 담배가 땡깁니다. 불량품 쥐박이를 리콜할 수도 없고......
(당연히 투표는 다른 '사람'에게 했지만...)
Commented by kome at 2009/01/27 15:20
나는 일본인입니다.
당신의 주장은 많은 부분에서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저희들은 여러분에게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여러분의 일본에의 흥미만큼은 아닐 것입니다가).비유 저희들이 여러분에게 진심으로의 사죄의 기분을 가졌다고 해도, 여러분에게는 그 사죄를 받아 들일 만한 상황이 갖추어지지 않다고 생각합니다.그러니까 저희들은 「어떻게 사죄해도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서늘한 관계로 상관없다」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27 16:16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음, 일본인들은 아마도 여러번 사과했는데, 왜 아직도 사과하라고 하느냐라고 말할것입니다. 일정부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일본의 여러 정치인들은 한국의 식민통치에 대해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아직도 그런 인식에 바탕으로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발언은 일부정치인의 시각일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부정치인들이 일본사회내에서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의 사과라는 것이 겉치레 라는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독일의 정치인이 2차세계대전 때, 프랑스를 점령한것은 정당한 일이었다고 주장한다면,
그 정치인이 독일 정치계에 계속 발붙일수 있을까요? 혹은, 그런 정치인이 독일의 여당에서 활동할 수 있을까요?
그런면에서 볼때, 일본의 사과는, 일본사회 내부에 깊숙히 자리 잡지 못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 일본인들이 우리(한국인)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면, 그것부터가 상당한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제 생각보다 더 좋은 상황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어떤 일본인들은 한국이 어디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일본에 사는 제 친인들로부터 자주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한국내부에서 사죄를 받아들일 상황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kome at 2009/01/27 17:19
답신 감사합니다.
소수의 일본인의 정치가나 지식인의 아무리 가가, 제2차 대전을 긍정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참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선조는, 마음속으로부터 자신들이 가고 있는 것은 아시아이기 때문에라고 믿어 여러분을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그것은 한국이나 중국, 대만 등에 고등교육 기관을 마련하고 있는 것부터도 압니다.서울 대학의 전신인 경성 제국대학은 현재의 일본에서는 구제국대학으로 불리는, 대학안에서도 최고의 환경을 정돈되었습니다.(식민지를 지배하고 싶다면 우선 교육을 빼앗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부터의 상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은 일본으로부터의 일방적인 애정과 믿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정치로 해라 문화에로 해라 사상으로 해라, 자신들이 기르지 않으면 자신의 것은 되지 않습니다.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혈족끼리 결렬히 싸우는 내전이 끝나지 않는 것은, 구미가 일방적으로 빼앗아, 주는 것으로, 역사의 흐름을 왜곡했기 때문에입니다.일본은 그것을 몰랐습니다.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한국인이 화나 있는 것은 거기인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다릅니까?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28 08:15
좋은의견 감사합니다.
그럼, 일본제국시대의 조선의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일단, 일본의 강점전에도 조선인들의 교육열은 대단했습니다. 조선인 보통교육은 1906년 23개 학교에 3380명이었던 반면, 1910년3월(강점되기 5개월 전이죠.)이 되면, 2146개 학교에 104,656명으로 증가합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하지 않았어도 이처럼,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kome님께서 관심을 가지신, 고등교육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고등교육기관(당시 사정을 감안하여, 중학교, 실업학교, 전문학교등도 포함) 학생수 통계를 보면, 20년대부터 급격한 성장을 이루고, 1930년대 후반에 가파른 상승세를 탑니다. 물론, 이 학생수에는 조선내에 거주했던 일본인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현상에 대한 제 판단은 이렇습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고조된 불만중 하나는 조선인들이 교육받을 곳이 너무 적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선내에선 교육시설이 턱없이 모자라서, 1920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조선인 유학생이 증가하기도 합니다. 3.1운동에서 터져나온 요구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은 일정부분 고등교육기관을 확충하게 됩니다. 또한, 30년대 후반이 되면 중일전쟁이 시작되었고, 일본은 대대적인 생산력확충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하는수 없이 우수한 일부조선인들을 교육시켜 고급인력수요를 충당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28 08:26
경성제국대학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경성제국대학은 1924년 '경성제국대학관제'가 공포된후 1926년에 문을 열게 됩니다. 1910년 조선을 강점한 일본이 왜 경성제국대학을 세우는데 16년이 걸렸을까요? 그리고 왜 1920년대에 세우게 되었을까요?
1919년 3.1운동후에,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교육열이 올라가게 됩니다. 1920년부터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는 1926년까지, '조선민립대학설립운동'이 벌어집니다. 만약 조선인들의 요구와 이런 운동이 없었다면, 과연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될 수 있었을까요? 최소한, 그 설립시기는 더 뒤로 밀려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28 08:30
마지막으로, 해방전후의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해방후의 북한자료가 미미 하므로, 해방전후의 남한의 교육상황을 이야기 하겟습니다.
1945년 8월 15일에 중등교육의 교사수는 1225명에, 학생수는79846명 이었습니다. 고등교육은 교사 257명에 2382명 이었습니다.
이로부터 채 2년이 되지 않은 1947년 5월 말에 보면, 중등교육은 교사수 6304명에 159650명 이었고, 고등교육은 교사수 1075명에 학생수는 13485명 이었습니다.
해방된지 겨우 2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조선인들은 교육확충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확충은 일본제국아래 있었을 때보다 훨씬 크고 더 적극적 이었습니다. 이런데도 일본이 진심으로 조선을 교육시킬 생각이었을까요?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28 08:32
만약, 당시 일본인들의 생각이 무엇이었는가,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조선인들을 일본사회의 하층민으로 흡수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당시 일본인들의 '애정과 믿음'이었습니다.
또한,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지금도 내전이 격렬하게 진행되는 곳과 달리 조선은 이미 천년이상 통합된 사회를 가져왔고, 민족적 동질성도 큽니다. 일본이 점령하기 전에 조선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통합된 사회였습니다.
Commented by kome at 2009/01/27 17:58
그러한 정치화가 정리되지 않는 것은, 일본인이 정치가에게 요구하는 것이 능력이며, 역사관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군요.
덧붙여서, 지금은 더이상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듯한 일본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있어서 한국은 큰 존재가 되었습니다.
단지, 슬픈 것에 그것은 너무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나라로서의 한국은, 「일본을 넘어뜨릴지도 모르는 적」(일본과 한국은 경제의 형태가 비슷하므로 경합 합니다)
사람으로서의 한국은, 「일본인이 상대라면 무엇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애국 무죄) 무례하고 무서운 사람」(소수의 한국인이나 재일 한국인은 일본에서 범죄를 많이 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에게 있어서 한국의 이미지는 이렇게 되고 있습니다.나는 한국인의 친구가 있으므로,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은 일도 쉿이라고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아마, 지금부터 더 일본과 한국의 사이는 나빠지겠지요.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28 08:36
소수지만, 한국인 불법체류자의 범죄에 대해서는 저도 좋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의 범죄행위에 대한 면죄부로 쓰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죠.
-더 말씀드려야 겠지만, 제가 학원갈 준비를 해야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하며, 특히 아래부분에서 일본인들의 생각을 좀 더 알게 된거 같아서 기쁩니다. 비록, 처음엔 서로 안좋은 감정으로 시작할 지라도 계속 서로 소통하게 된다면 더 좋은 관계를 맺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kome at 2009/01/29 16:39
매우 공부가 되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조선이 옛부터 교육에 열심인 나라인 것을 알았습니다.

일본의 일부 젊은이는( 나도 포함해입니다만) 그러한 사실은 모르네요.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일부 일본인(여러분은 우익이라고 부르는군요)은 스스로가 조선을 보다 좋게 이끌었다고는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단지, 한국의 역사 교육에서는 마치 일본이 조선을 미워서, 일방적으로 착취한 것처럼 쭉 하는 것이 싫다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일도 했지만, 좋은 일도 했겠죠?이렇게 말하고 싶다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지금은 그 슬픔이 미움이 되어, 넷을 중심으로 폭주해 「미개인 조선인을 일본인을 도와 주었다」라고 하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나는 그것이 걱정입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29 20:15
저도 kome님 덕분에 여러가지 자료를 찾아보게 되고, 일본인들의 생각을 알게되어서 기뻤습니다.

저는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이 조선을 특별히 미워해서 식민통치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일본제국의 이익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식민지 시대에 수십만명의 일본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전부 악인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일본인 교장은 평소에도 겸손하게 조선인들을 대했으며, 해방이 되자 조선인들에게 축하하면서, 자신이 조선에서 모은 재산을 조선인들에게 남기고 갔습니다. 감동한 조선인들이 그 교장에게 모아준 여비가 그가 기부한 액수보다도 더 많았습니다. 거기에다 그 교장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해를 당할까봐 배가 있는 항구까지 청년들을 호위로 붙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렇듯, 일본인들은 나쁜일도 했지만, 좋은일도 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국가라는 관점에서, 일본제국의 입장에서, 조선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최대한 쥐어짜야할 땅이었습니다.
저 역시, 일본인들에게 맹목적인 적대감을 가지는 것은 경계합니다. 일본이라는 국가라면 몰라도, 사람으로서의 일본인들을 적대할 이유가 없지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더더욱 미움과 증오가 증폭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kome님께서 우려하시는 바를 저 역시 우려하고 있습니다만, 이번처럼 서로 대화한다면 화해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1/29 20:20
자신의 언어가 아닌 언어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어려우셨을 텐데, 솔직한 생각을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답례로 제가 일본어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아직 영어공부가 끝나지 않아서. ㅜ_ㅜ
기회가 된다면 꼭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인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실, 이글을 읽은 몇몇 일본인들께서 제 의견을 잘못 아셨을거 같은데, 그건 컴퓨터로 된 미숙한 번역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분들께 제 의견을 제대로 전달되길 원합니다. 지금 당장은 어려운 일이겠지만요.^^
Commented by 조철규 at 2009/02/08 07:33
왜 일본과 한국은 화해할수 없는가... 종원아.. 난 알지?ㅋ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9/02/08 12:31
...무서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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