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노무현에 대하여.


2002년 부터 내게 존경과 비판과 증오와 측은과 조의의 대상이 된 사람이 있었다.


2002년 난 그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흥분했고, 존경했으며, 그의 승리가 세상을 바꿀것이라 믿었다. 그는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의 위치에 올랐다. 그가 당선됐던 날 나는 흥분에 휩싸여 시를 쓸 정도였다. 어린 학생이 쓴 저급한 시였지만...그때 그에게 바친 내 열정은 그랬다.


2003년  조금씩 어긋났다. 그러나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현실이니까...워낙 장애물이 많을 테니까...이라크전쟁 파병을 맞이해서도 나는 노무현을 이해하려고 했다.

2004년 그가 위기에 빠졌다. 나는 학생이었지만, 시위에 나갔다. 그에게 조금씩 실망해간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죄짓지 않았는데도 자리에게 쫓겨난 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탄핵반대 시위현장에서 외치고 소리쳤다.


2005년 부동산 문제가 점점 불거지기 시작했다. 나는 왜 분양원가공개를 시행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점점 더 그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2006년 한미FTA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처음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 공부를 조금했다. 나는 이것이 우리나라를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내 비판은 점점 증오에 물들어 갔다. 그가 민주주의에 했던 공적을 생각해서 욕을 하는 것은 자제했지만, 비합리적인 비판을 들으면 그것을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고 전달하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7년 이젠 별로 관심조차 없었다. 문제는 포스트노무현 이었다.


2008년 이명박의 시대를 맞았다.  난 그제서야 노무현이 자신에 대한 반대파에게도 민주주의적 원칙을 지키기위해 노력했음을 깨달았다. 그가 있었을때는 김대중시대를 거쳐 자유가 증진되어 가던 흐름이 더 증폭되었음을 깨달았다.

2009년 노무현에 대해서 검찰이 계속 압박했다. 연일 그의 가족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만 나는 노무현이 직접 돈을 받거나, 돈을 받은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최소한 그의 정직성만큼은 믿었다. 그의 진정성만큼은 믿었다. 그러나 걱정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지. 족벌신문들이 그를 계속 물어 뜯을테고, 온갖 말들을 다 붙여서 그를 더럽히려고 할텐데 그가 어떻게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그가 그 스스로를 변호하기위해, 그가 양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벼랑에서 뛰어내렸다.

노무현씨, 당신께서 저 세상에서너마 편히 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울러, 감사했습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당신의 노력에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추신: 내가 '노무현씨'라고 한 것은 故人을 욕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민주주의자 이다. 노무현전대통령을 '대통령'이라기 보다 내가 사는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동료시민으로서 표현하고자 한것이다. 민주공화국에서 그 누구든 현직을 벗어나면 평범한 시민이 된다. 아니, 현직에 있을 때 조차 공식석상이 아니라면 굳이 직책명을 이름 뒤에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것은 오히려 노무현이 타파하려고 했던 권위주의다. 필요한 권위는 현직에 있는 사람에 대해 공식석상에서 발언할 때 뿐이다. 나는 그가 견지했던 이상을 짓밟을 수 없다.

-개인적인 추모글이기에 따로 벨리에 올리지 않는다.- 

추신2: 그의 여정을 다시 쭉 살펴봤다. 그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었으나, 그가 해온 여정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002년 그에게 열광했던 그 감정을 다시 찾았다. 너무 늦게찾았다.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고인께 정말 죄송하다. -2009.5.24 12:33에 덧붙임

by 나아가는자 | 2009/05/23 19:55 | 요즘 근황및 생각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democrat.egloos.com/tb/238857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