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이란 무엇인가?

앎이란 무엇인가?

 


- 이 글은 2011년 1학기에 청강한 ‘철학의 기초’ 수업에서 내가 낸 중간고사 답안지이다. 문제는 ‘앎이란 무엇인가?’ 이었다. 많은 오류가 있겠지만, 교수님이 지적한 곧 3곳만 수정하였다. -

 

 

   앎. 그것은 이 세계에 사는 인간이 추구하는 그 무엇이다. 따라서 앎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세계와 인간에 대해 먼저 서술해야 한다.

   세계는 복잡한 연관관계를 가진 개체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형성해나가는 것이다. 이 세계 속에서 인간들은 다양한 개체들을 경험한다. 이 개체들을 하나의 언어로 규정하여 이 개체들에 대한 경험을 이성을 활용한 생각 안에 두기 위한 것이 개념이다. 개념을 통해 인간은 생각한다. 개념이 없으면 이성은 사용될 수 없고, 인식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인식하는데, 사물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넘어 이성을 활용하여 생각해야 한다. 감각능력은 수동적이기에 인간이 잘못 쓸 염려는 없지만, 이성은 능동적인 능력이기에 인간이 이를 활용할 때에는 올바른 개념을 논리적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이성능력의 행위, 곧 생각은 추상을 그 대상으로 한다.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추상은 진리라는 빛이 비추어질 때 이성이라는 눈으로 그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때 진리는 불변, 보편, 필연을 그 성질로 가지면서, 형식적인 조건인 모순율, 근거율을 충족시켜야 하고, 동시에 실질적인 감각능력에 의해 그 참됨이 확인되어야 한다. 이처럼 엄밀하게 정의된 진리에 의해서 이성이 대상을 바라볼 때 자의적인 앎이 아니라 진정한 앎에 가까이 갈 수 있으며 이런 과정자체가 곧 인식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만 가지고는 왜 앎이 우리의 삶과 연관되는 지가 분명치 않다. 인간은 불완전하므로 진리의 빛을 볼 수 없으며, 앎을 향해가는 길도 마치 걸음마와 같아서 수없이 넘어져야만 가능하다. 왜 인간은 그런 고난을 겪으면서도 앎을 추구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인간의 욕구, 채워짐을 갈망하는 그 욕구를 보아야 한다. 이간은 자신의 유한성, 시간성, 불완전함, 현실에 있지만 무한성, 영원성, 완전함, 이상을 추구한다. 따라서 인간은 현재의 자신을 넘어 더욱 이상에 가까운 자신을 욕구하고, 욕구의 대상인 ‘새로운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따라서 관심은 현실과 이상사이에 서있는 ‘나’가 그것들과 맺고 있는 관계이다. 이 지점에서 반성이 등장한다. 나의 잘못된 부분을 후회하고, 이를 다른 인간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다시 새로운 나를 향해가는 이 과정들이 반성이다. 따라서 욕구, 관심, 반성은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성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보편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반성에서 우리는 다른 인간을 거울로서 자신을 비춰본다. 이 거울에 따라 잘못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잘못된 나’로 이끌 수도 있다. 특히 주변거울이 온통 왜곡된 것들만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보편적인 기준, 변하지도 않고 필연적인 그 무엇이 필요하다. 바로 이 그 무엇을 채워주는 것이 인식이다.

   그러나 인식에 멈추어 있는 것은 진정한 앎이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앎은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 모두를 꿰뚫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추상, 변하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만으로는 진정으로 ‘앎’에 다다랐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필요한 것이 ‘이해’이다. 이해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대등한 인식과는 달리, 주체가 객체에 깊이 몰입하여 그 객체를 주체가 스스로 재구성 해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해는 대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 또, 그 대상과 그 대상의 뒤에 숨어있는 세계의 연관성을 추적하여 그 의미를 파악한다. 이해에 의해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자신이 경험하는 개별적인 사물을 넘어 세계의 연관관계 속에서 파악해낸다. 따라서 이해는 인식보다 더 깊은 앎이다.

   그러나 이해만으로는 진정한 앎을 채울 수는 없다. 이해는 잘못하면 현상에 대한 정당화에 머무르게 된다. 이해가 그 대상을 이해하려는 자기결단에 의해 촉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해만으로는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다. 이때, 인식을 통해 얻은 앎, 곧 보편적인 것으로서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인식이 없이는 앎은 방향을 찾을 수 없고, 이해 없이는 앎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진정한 앎은 인식과 이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상의 정리는 내가 이해한 앎에 대한 개념들의 관계를 서술한 것이다. 따라서 이상의 것이 틀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 더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앎. 그것은 내가 이 세계에 서있는 자리와, 앞으로 이 세계에서 무엇을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내가 방금 열거한 그 두 가지를 과연 알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앎은 삶과 연결된다.

   삶은 이 세계에 던져진 우리가 세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따라 행위해가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삶은 타인에 의해 주어질 수 없다. 스스로 세계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물론, 그 의미파악을 위한 세계관은 인간이 맥락 안에 존재, 곧 역사적 존재이기에 이미 주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결단을 통해 자신의 역사적 위치에서 새로운 의미와 그에 따른 행위를 창출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계는 대하소설과 비슷한 거대한 대서사시이다. 각각의 인간은 그 서사시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그 이야기쓰기, 곧 자기결단과 그에 의한 창조는 인간의 삶이 가장 빛을 발하는 행위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앎이, 특히 이해가 필요하다. 세계에 던져진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면 온통 낯선 것들 안에 갇혀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면 그 인간은 영원한 수인(囚人)의 삶을 면치 못한다. 결국 앎은 인간다운 삶, 자신이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되어 가는 삶, 곧 자유로운 삶의 원천이다. 따라서 앎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가 곧 올바른 삶이 된다. 좋은 목표를 위한 나쁜 실천은 악이 되기 쉬우나, 좋은 행위는 우리를 좋은 목적으로 이끌 수 있다. 앎을 추구함에 따라 자신의 위치와 세계에 의미부여하는 것 자체가 곧 자유로운 삶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스스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인간이라면 앎에 대한 추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by 나아가는자 | 2011/04/30 22:20 | 요즘 근황및 생각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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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t 2014/05/30 03:35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좋은 정리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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