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형무소 단상

   어제 탑골공원, 태화관, 천도교교회당, 서대문형무소, 독립문 등등 한국 근현대사에서 뜻 깊은 사적지들을 답사했다. 혼자가는 답사가 아니라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갔던 답사라서 더 뜻깊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서대문형무소였다. 일본제국주의라는 식민지통치권력이 가장 끔찍한 고문을 통해 인간성을 말살했던 곳. 그 고통속에서도 사람으로써 참된 길을 가고자 했던 분들이 있어 인간성이 가장 빛나던 곳, 서대문형무소.

   그러나 가장 슬펐던 것은 우리의 공동체, 곧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같은 곳에서 일제와 똑같이 고문과 정치적 학살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서대문형무소의 사형장에서 일제의 이름으로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처형된 것도 마음이 아팠지만,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조봉암 선생,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들과 같은 분들이 해방이후에도 처형되었다는 점은 정말 서글프게 다가왔다. 일제의 고문과 학살에 대해서 일본인들이 서대문형무소에 비탄의 감정을 느끼듯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그 공동체의 한사람으로서 책임감과 비탄을 느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서대문형무소는 먼저, 우리가 우리 사회공동체의 주권을 잃어버림으로써 다른 사회공동체의 폭압적인 지배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는지를 보여준다. 또 거기에 얼마나 치열하게 저항했는지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공동체가 독재권력에 의해 외세 못지않게 폭압적으로 권력을 휘둘렀음도 보여준다. 또한, 독재권력의 폭력에 대해 독립운동만큼이나 맹렬히 저항했음도 보여준다. 그런 저항끝에 온 민주화를 통해 우리사회는 다시 인간성을 보존할 수 있었고, 권력의 폭력을 제어할 수 있었다. 

   지금의 우리가 서대문형무소를 '과거의'  끔찍한 일로 느끼는 것은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기나긴 시간을 거치고서야 가능했다. 서대문형무소가 일제 통감부 시기인 1908년부터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1987년까지 지속되었는데, 그 시기는 일제의 국권침탈기에서 군사독재에 이르는 기간이며, 동시에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이 결국 같은 흐름에 있다는 사실을 이만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한편에서는 아직도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이 연속선 상에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것도 하나의 의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혹시 그런 생각이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공동체. 곧, 대한민국이  끔찍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 자신의 공동체를 사랑한다면 그 공동체가 언제나 정의로웠다고 분칠을 하기보다 앞으로 정의로워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 우익과 같이 자신의 조국을 잘못 사랑하는 꼴이 될 것이다.  

by 나아가는자 | 2012/10/28 03:40 | 요즘 근황및 생각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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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페이토 at 2012/10/28 07:01
동감해요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12/10/28 21:28
오랜만이네요. ^^
Commented by 零丁洋 at 2012/10/28 08:04
진실이 두려운 자들이 많죠. 역사의 심판이란 바로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죠.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12/10/28 21:29
말씀하신 바에 깊이 동감합니다.
Commented by 명탐정 호성 at 2014/02/25 23:01
조봉암 판결문 :

특무대에서 민간인을 수사하면 불법이라서 무죄


http://glaw.scourt.go.kr/wsjo/panre/sjo100.do?contId=2064767&q=%EC%A1%B0%EB%B4%89%EC%95%94&nq=&w=total&section=&subw=&subsection=&subId=2&csq=&groups=&category=&outmax=1&msort=&onlycount=&sp=&d1=&d2=&d3=&d4=&d5=&pg=0&p1=&p2=&p3=&p4=&p5=&p6=&p7=&p8=0&p9=&p10=&p11=&p12=&sysCd=&tabGbnCd=&saNo=&joNo=&lawNm=&hanjaYn=N&userSrchHistNo=&poption=&srch=&range=&tabId=

대법원 2011.1.20. 선고 2008재도11 전원합의체 판결
[간첩·간첩방조·국가보안법위반·법령제5호위반]〈조봉암 사건〉[공2011상,508]
【판시사항】
[1] 구 국가보안법 제1조, 제3조 위반죄에서 ‘결사 또는 집단’의 의미 및 그 주관적 요건인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 유무의 판단 기준
[2] 피고인이 평화통일의 실현 등을 강령·정책으로 하여 결성한 ‘진보당’이 구 국가보안법 제1조, 제3조에 정한 ‘불법결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
[3]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의 소재(=검사) 및 유죄를 인정하기 위한 증거의 증명력
[4] 형법 제98조 제1항에서 ‘간첩’의 의미 및 간첩이 이미 탐지·수집하여 지득하고 있는 사항을 타인에게 보고·누설하는 행위가 간첩행위인지 여부(소극)
[5] 피고인에 대한 ‘간첩’의 공소사실은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지득한 관련 문건 등을 보고·누설한 행위에 불과하여 그 자체로서 형법 제98조 제1항에 규정된 간첩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한 사례
[6] 재심이 개시된 사건에서 재심대상판결 당시의 법령이 변경된 경우 법원이 범죄사실에 대하여 적용하여야 할 법령(=재심판결 당시의 법령)
[7] 이른바 ‘진보당사건’에 관한 재심대상판결인 대법원 1959. 2. 27. 선고 4291형상559 판결에 대하여 재심이 개시된 사안에서, 원심판결과 제1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각 파기하고 직접판결을 하면서 제1심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된 진보당 관련 구 국가보안법 위반의 공소사실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간첩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는 한편, 무기불법소지행위에 대하여는 형의 선고를 유예한 사례

(출처 : 대법원 2011.01.20. 선고 2008재도11 전원합의체 판결[간첩·간첩방조·국가보안법위반·법령제5호위반] > 종합법률정보 판례)
Commented at 2012/11/19 18:1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명탐정 호성 at 2014/01/11 16:16
조봉암 판결문 :

특무대에서 민간인을 수사하면 불법이라서 무죄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14/02/24 22:30
무죄의 이유는 그렇게 간단히 압축할수 없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명탐정 호성 at 2014/02/25 23:01
http://glaw.scourt.go.kr/wsjo/panre/sjo100.do?contId=2064767&q=%EC%A1%B0%EB%B4%89%EC%95%94&nq=&w=total&section=&subw=&subsection=&subId=2&csq=&groups=&category=&outmax=1&msort=&onlycount=&sp=&d1=&d2=&d3=&d4=&d5=&pg=0&p1=&p2=&p3=&p4=&p5=&p6=&p7=&p8=0&p9=&p10=&p11=&p12=&sysCd=&tabGbnCd=&saNo=&joNo=&lawNm=&hanjaYn=N&userSrchHistNo=&poption=&srch=&range=&tabId=

대법원 2011.1.20. 선고 2008재도11 전원합의체 판결
[간첩·간첩방조·국가보안법위반·법령제5호위반]〈조봉암 사건〉[공2011상,508]
【판시사항】
[1] 구 국가보안법 제1조, 제3조 위반죄에서 ‘결사 또는 집단’의 의미 및 그 주관적 요건인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 유무의 판단 기준
[2] 피고인이 평화통일의 실현 등을 강령·정책으로 하여 결성한 ‘진보당’이 구 국가보안법 제1조, 제3조에 정한 ‘불법결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
[3]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의 소재(=검사) 및 유죄를 인정하기 위한 증거의 증명력
[4] 형법 제98조 제1항에서 ‘간첩’의 의미 및 간첩이 이미 탐지·수집하여 지득하고 있는 사항을 타인에게 보고·누설하는 행위가 간첩행위인지 여부(소극)
[5] 피고인에 대한 ‘간첩’의 공소사실은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지득한 관련 문건 등을 보고·누설한 행위에 불과하여 그 자체로서 형법 제98조 제1항에 규정된 간첩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한 사례
[6] 재심이 개시된 사건에서 재심대상판결 당시의 법령이 변경된 경우 법원이 범죄사실에 대하여 적용하여야 할 법령(=재심판결 당시의 법령)
[7] 이른바 ‘진보당사건’에 관한 재심대상판결인 대법원 1959. 2. 27. 선고 4291형상559 판결에 대하여 재심이 개시된 사안에서, 원심판결과 제1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각 파기하고 직접판결을 하면서 제1심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된 진보당 관련 구 국가보안법 위반의 공소사실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간첩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는 한편, 무기불법소지행위에 대하여는 형의 선고를 유예한 사례

(출처 : 대법원 2011.01.20. 선고 2008재도11 전원합의체 판결[간첩·간첩방조·국가보안법위반·법령제5호위반] > 종합법률정보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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